여행기록/25 년 5 월 김해, 합천,고령

2. 김해:박물관,고분군,수로왕릉,봉황동유적

코로모 2025. 6. 17. 00:37

둘째날(5/21), 가야문화를 찾아가는 여행 시작

8 시 반에 조식부페로 아침식사(1인 25,000 원)
 

점심은 거르거나
간단히 간식정도로 먹을 예정이라
아침은 밥과 국수까지 든든히...
 
★ 국립 김해박물관
 

호텔에서 10 분쯤 걸려 김해박물관 도착
 

상설전시관으로 입장
 

상설전시관은 1 층과 2 층으로 이루어지는데
1층에는 가야 이전 사람들의 삶과 문화,
그리고 가야가 등장하고 발전하며
쇠퇴하기까지의 모습을 시간순으로 소개한다.
 
 

신석기 시대 인골,
이집트 문명박물관에서
3,500 년전 유골이 전시된 것을 보고
식겁했는데,  우리나라에도
몇천년된 유골이 전시되고 있었네..
부산 가덕도에서 신석기 시대 공동묘지가
발견되었는데, 확인된 인골만 48 개체로
우리나라 최대규모다. 죽은 이를
엄마 뱃속 아기 모습처럼
웅크린 자세로 묻는
굽혀묻기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석기 시대의 검들은 부러지지 않는한
깨끗하게 형태를 유지중인데
철기 시대의 검과 도구들은 녹이 슬어 있다.
후대에 유물을 남기려면
철보다는 돌이 좋은 듯...
 

창원 다호리 1호 나무널(목관),
통나무의 안을 파내고 세로로 반을 갈라
아래쪽에 죽은이를 눕히고
위쪽을 덮은 형태로 보인다.
널무덤의 주인공은
껴묻거리의 질과 양이 최상급인 점에서
이 일대 으뜸가는 읍락의 유력자로 추정된다.
'널무덤'이라는 단어도 처음 들었고
무덤에 같이 묻는 부장품을
'껴묻거리'라고 하는 것도 재미있다.
우리 말이 참 아기자기하게 재미있네.. ㅎ
 
2층 전시실은 
가야사람들의 문화를 대표적인 5 개의 주제,
'가야의 멋', '가야사람들의 삶', '가야토기',
'가야의 철', '가야의 해상교역'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다.
 

김해 회현리 조개더미는
1907년 처음 알려진 뒤 여러차례 발굴되었고
2001 년 봉화대유적과 함께
'김해 봉황동유적'이라는 이름으로
보존되고 있다.
전시된 토양층은 1998년 발굴 당시
조개더미의 단면을 보존하려고 얇게 떠낸 것.
조개더미의 깊이는 6 m  이상, 모두 17개층,
발굴된 유물을 보면 조개더미가
기원전후부터 삼국시대까지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창원 현동 387 호 무덤에서 나온 배모양 토기
 

2층 전시실의 출구 가까이 있는 
'가야학 아카이브'
휴식을 취하며 가야 문화와 관련된 학술 도서,
영상 자료를 열람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상설전시관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이렇게 멋진 곳이 있다.
멋진 곳을 걸어서 기획전시가 열리고 있다는
가야누리 건물로 향했다.
 

가야누리 3층에서 기획전시 '크리스탈 가야'
우리가 간 날 하루전부터 시작된 전시다.
가야가 세워지기 전부터 변한사람들은
금,은,비단보다 구슬을 소중하게 여겼다고 한다.
실제로 이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을 보면
금,은보다 구슬 장신구가 훨씬 많다. 
 

김해의 고분에서 발굴된 목걸이들,
이 외에도 화려한 장신구 유물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 대성동 고분군
 

김해 박물관에서 가까이에 있는 대성동 고분군,
(차로 7~8분 걸림)
먼저 그 앞에 있는 대성동 고분 박물관 방문
 

대성동 고분 박물관은
도내 가장 많은 가야 유물을 보유하고 있다.
 

대성동 고분군의 축소 모형(1:100)
대성동 고분군은
금관가야 최고 지배계층의 집단 묘역으로
2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왕가의 언덕'이라고 하니 
이집트의 '왕가의 계곡' 생각이 났다.ㅎ
 

1호분의 발굴 당시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독무덤, 항아리를 관처럼 사용했나 보다
위 사진은 발굴당시 사진,
아래는 깨진 독을 조각조각 이어 붙여 놓은 것,
3개의 토기를 연결하여
하나의 매장 공간을 만들었다.
 
 

고분군에서 출토된 토기들,
오리모양 토기가 참 예쁘다.
 

박물관 바로 앞에 있는 고분군으로 향했다.
 

'왕가의 언덕'에 오르다.
 

고분이 있던 자리에는
키작은 나무를 심어 표시를 해놓았다.
 

언덕 아래쪽으로 넓은 공터가 있어
주민들이 산책하기 좋은 장소 같았다.
 
★ 수로 왕릉
 

김수로 왕릉도
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
주차할 곳을 못찾아 좀 헤매다가
유료 주차장에 대고 가는 중,
왕릉으로 들어가는 문 - 숭화문
 

'숭화문'으로 들어가
'홍살문' 과 '가락루'를 치례로 지나고 
'납릉정문'이 나오면 
그 안으로 보이는 김수로 왕릉,
(홍살문에서부터 왕릉이 보이기 시작)
납릉정문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
 

금관가야의 건국 시조 수로왕의 무덤,
높이 5m, 지름 22 m,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따르면
수로왕이 158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는데... ??? 
 
★ 봉황동 유적지
 

수로왕릉에서 차로 5분쯤 가면 있는
봉황동 유적지,
봉황동 유적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회현리 패총과
금관가야의 대표적인 생할 유적지인
봉황대가 합쳐져 확대 지정된 곳이다.
 

봉황대로 오르는 오르막길이 있었는데
힘들 것 같아 평지길로 산책 시작했다.
 

추정 복원된 고상가옥,
이 곳에서 발굴된 고상가옥들은
대외교역을 위한 창고시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망루
가야시대 당시의 건축기술과 구조를 고려하여
추정 복원한 것으로 높이는 약 10 m,
외부 침입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는 시설의 일종
 

망루 지나 순환산책로를 계속 걷다
 

.고상가옥과 망루가 여러 채 모여 있다.
이것도 추정복원된 것
 

특이한 형태의 창고
 

패총이 발굴된 곳에서
유리로 보호된 상태로 전시되어 있다.
봉황동 유적은 1907년
일본인 학자에 의해 발견되었고
그 후 1935년까지 8 차례 발굴이 이루어졌다.
 

김해박물관에서 보았던 패총은
이 조개더미 토양층을 얇게 떠낸 것
------------------------
봉황대까지는 못갔지만 
복원된 가옥들을 보며, 새소리를 들으며
산책하는 길이 참 좋았다.
패총 전시 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봉황동 유전지 방문을 마치고
시간이 남아 진해에 가보기로 했다.